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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당신의 지우고픈 기억, 파시겠습니까? 연극 <국경시장> @CJ아지트 대학로

“아픈 기억만을 지워드립니다.”

이별 후 서로의 기억을 지우려는 연인을 그린 영화 <이터널 선샤인> 속 대사입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잊고 싶은 순간을 지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여기, 당신이 없애고 싶어 하는 기억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습니다. 심지어 환전소를 통해 두둑한 화폐 주머니까지 건네는 이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연극 <국경시장>입니다.

연극 국경시장

원작은 문학동네 2012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인 김성중 작가의 동명 소설입니다. 그런 만큼 작가 특유의 상상력은 무대에서도 십분 발휘되는데요. 연극은 원작의 서사에 맞춰 남자, 로나, 주코 세 사람의 여행기를 그립니다. 여기에 실재와 환상을 오가는 오묘함이 더해져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일행은 N국과 P국 사이의 접경지역에서 열리는 국경시장에 가게 됩니다. 기억을 매개로 ‘보름달이 뜰 때만 서는 시장’이라는 독특한 설정 속에서 다양한 사건과 맞닥뜨리게 되죠.

개성 뚜렷해진 신영은식 무대

신영은 연출가

초연에 이어 극단 드란의 상임 연출인 신영은이 다시 각색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지난해 9월 기억이라는 소재, 기발함이 돋보이는 이야기,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색다른 표현법이 연극계를 사로잡았는데요. 올해 9월에는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공간지원작으로 발탁되며 또 한 번의 붐을 예고했죠. 드레스리허설 현장에서 만난 연출가는 예상대로 빈틈이 없었습니다. 배우의 작은 손짓부터 음향의 미세한 울림까지 조목조목 짚어 나가던 그녀. 두 번째 공연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기억을 통해 파헤친 인간의 욕망

등장인물 남자

남자가 무대의 포문을 엽니다. 그런데 이 사람 행색이 심상치 않습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찢긴 옷에는 핏자국이 선명합니다. 넋 나간 표정으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라고 중얼대는 그.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발단은 메카데의 수상 방갈로. 각기 다른 상처를 품은 채 여행을 떠나온 세 사람이 만났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동행을 약속하게 되는데요.

이들은 N국과 P국 사이를 배회하다 고기 잡는 소년들에 의해 국경시장에 도착합니다. 시장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종이 지폐가 아닌 ‘물고기 비늘’이었는데요. 무의식적으로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가진 기억을 조금씩 팔아 넘기게 됩니다. 환전소 입구를 나오면서 “실패하고 불행했던 시간은 필요 없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며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죠. 그러나 손쉽게 지워진 기억의 공백은 환멸과 죽음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배우의 표현력, 섬세함에 여유까지

연극 국경시장 배우진

무대 위에 올라선 배우들의 얼굴이 익숙합니다. 주인공 임종완, 박수진, 권다솔을 비롯해 초연에 참여했던 배우가 그대로 뭉쳤기 때문인데요. 이들의 표정과 몸짓, 발성은 첫 공연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어딘가 여유와 안정감이 생겼달까요.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전문 무용가들도 합류했습니다. 유연하면서도 역동적인 안무를 선보이며 무대를 한층 풍성하게 했죠.

다양한 무대예술의 향연

연극 국경시장 시각적으로 구현한 무대

이번 공연은 극의 서사와 묘사에 대한 시각적 표현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는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설치 미술팀 ‘더 바이트 백 무브먼트’와의 협업으로 얻은 결과물인데요. 우선 무대를 가득 채우는 보름달의 변화가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또 다채로운 색채와 특이한 문양의 조명이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국경시장 커튼콜

지난 13일부터 CJ아지트 대학로에서 막이 오른 스테이지업 공간지원작 연극 <국경시장> 소개였습니다. 작품은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깊은 위로와 격려를 전하죠. 공연은 오는 9월 27일까지 진행됩니다. 나를 위한 ‘진짜 힐링’이 필요하신 분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예매하세요!

연극 <국경시장>
일시: ~9월 27일(목)
장소: CJ아지트 대학로